소나무와 한국인

조선시대 소나무 그림

관리자 | 2018.09.19 | hit. 13

자연과의 합일사상이 중요시되는 우리 문화에서 그림 속에 그려지는 자연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다. 화가들은 자연의 사물이 아름답다고 하여 그것을 모두 화폭에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상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내포한 이치와 섭리가 논리적으로 정립되어야 비로소 화가들은 붓을 든다. 즉 자연물이 지니고 있는 생태적 특징이나 형상을 통하여 인간의 품성이나 덕성을 표현해 낼 수 있을 때, 그것은 비로소 그림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림의 소재는 이처럼 엄격하게 선별되고 정립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그림의 소재를 이해하는 것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기본이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할 때, 소나무가 그림 속에 등장하는 나무 가운데 가장 많이 그려졌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인 연구의 테마가 된다.


소나무는 왜 우리 조상들의 그림 속에 빈번 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아마도 소나무가 생태학적으로 우리 산천에 널리 분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소나무가 우리 삶과 관련하여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온전하게 결합 되어, 소나무는 그림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소나무는 단독으로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산수 속에 그려지는 수목 중의 하나로 등장하기도 하였고, 인물화에서 그 배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나무에 대해서는 상징성의 측면, 그림에 나타나는 소나무 유형의 분석, 그리고 소나무를 그리는 수지법(樹枝法)의 측면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연구가 가능하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소나무와 그림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그림 속에 소나무가 그려지는 연유가 되는 소나무의 상징성과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 소나무 수지법이 시대별, 화가별로 어떻게 변천해 가는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I. 소나무 그림의 상징성과 유형


소나무는 예부터 주된 그림의 소재였다. 옛 문헌기록에는 "雪松圖", "畵雙松", "老松屛風" 등의 기록이 보이며, 『 열성어제(列聖御製)』에는 정종(正宗)이 열람했다는 송병(松屛), 즉 소나무 그림으로 구성된 병풍으로 짐작되는 작품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여러 기록들을 통해 볼 때, 소나무 그림은 여러 계층에서 두루두루 그려지고 감상되었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림과 관련하여 소나무의 어떤 상징성이 화가들로 하여금 소나무를 그림의 소재로 채택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그림과 관련한 소나무의 상징성을 거론하고 그에 의거하여 그림을 유형화해 보았다.


우선 살펴볼 것이 소나무가 '나무 중의 나무', 군자의 품격을 지닌 나무로 비유되었던 문화사적 맥락일 것이다. 소나무가 군자를 상징하게 된 것은 일찍이 중국 오대(五代)의 일이다. 오대의 화가이며 이론가였던 형호(荊浩)는 『필법기(筆法記)』에서,


조락하지 않고 꾸미지 않는 모습, 오직 곧은 저 소나무 뿐 일세.
기세가 높고 험하건만 마디를 굽혀서 공손한 모습도 보여주네..
(중략) 아래로 범 목과 접할 때는 화목하게 어우러질지언정 뇌동하지 않네.
시가 문학에서 소중하게 다루어 졌음은 군자의 풍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 일세


라고 하였다. 소나무는 단순히 호연한 영웅 호걸이 아닌 고아한 군자의 모습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유사한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강희안(姜希顔, 1417 ~1464)은 『양화소록(養花小錄)』 노송 부분에서,


소나무는 바위틈에 나서 천 길이나 높이 솟아 그 곧은 속대와 거센 가지와 굳센 뿌리를 가지고 능히 추위를 물리치고 엄동을 넘긴다. 그러므로 뜻있는 군자는 소나무를 법도로 삼는다.


고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매난국죽의 사군자에 소나무를 더하여 오군자(五君子)라 일컬어지기도 하고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송, 죽, 매를 함께 묶어 얘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은 일찍이 『논어』의 「자한(子罕)」에 "歲寒然後之 松柏之後?"라고 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인문. 선동전다도 / 지본채색, 41 x 30.8cm / 간송미술관 소장


추운 겨울이 되면 다른 나무는 모두 잎이 시들어 버리지만, 소나무와 잣나무는 상록의 푸른 빛이 오히려 되살아나 다른 나무와 구별됨을 새삼 알게 된다는 말로, 역경에 처해 보아야 인간의 진가를 안다는 말이다. 이러한 고전은 조선말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 ~1856)의 〈세한도(歲寒圖)〉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추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설송도(雪松圖)〉 역시 이러한 상징성과 관련지어 얘기할 수 있다. 보통의 나무는 겨울이 되면 잎이 지기 때문에 겨울을 배경으로 해서 그릴 수 있는 나무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소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모두 잎이 질 때, 그 푸르름으로 인하여 더욱 돋보이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에, 눈 덮인 소나무, 설 송은 강한 상징성을 띨 수 밖에 없다. 이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사실그대로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소나무는 그림에서 인물의 자화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인소장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의 <고송산계도(孤松山溪圖)>는 이러한 대표적인 예에 해당된다.


그가 66세 때 (1788년)에 그린 이 그림은 화면에 적힌 제발을 통해 목재(木齋) 이삼환(李森煥, 1729~1813)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하자 고송(孤松)과 산계(山溪)에 이삼환의 도량(度量)과 의태(意態)를 담아 전신(傳神)하였다고 밝히며 제작한 그림이다.


인물의 형태를 그대로 옮겨 그리는 인물초상화 대신에 소나무를 한 그루 그려주면서 그것이 당신의 초상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소나무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두 번째 상징성은 소나무가 장수를 상징하는 맥락이다. 늙거나 병들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포기할 수 없는 절실한 염원이었고, 이런 염원을 소나무 그림에 담아 표현했다. 소나무가 장수를 상징했던 것은 소나무가 지니는 상록의 속성과 천년을 산다는 설에서 비록 되었다.


이렇게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영물로 구성된 '십장생(十長生)'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소나무가 그림 속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는 <십장생도>와 <일월오봉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십장생 도류의 그림에서 소나무는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드물다. 장수를 상징하는 10가지 영물중의 하나로 거북, 바위, 학, 영지, 사슴 등과 함께 등장하였다.


10가지 영물이 함께 십장생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소나무와 학이 함께 하면 <송학도>, 암석과 함께하면 <송석도>, 사슴과 함께 하면 <송록도>가 된다. 또한 대나무, 바위와 함께 묘사되면 <고목죽석도>가 된다. 여기서 대나무나 바위는 소나무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의미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이다.


이렇게 몇 가지의 영물이 소나무와 함께 장수를 상징하는 것은, 그림에서뿐 아니라 도자기나 목공예 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청화백자송학문접시나 계명대학교박물관의 <목침>, <팔걸이> 등에서 문양으로 새겨진 십장생과 그 가운데 소나무를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상징성은 탈속과 풍류이다. 원래부터 소나무 자체가 이러한 상징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림 속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의미를 읽어내게 된다.


옛 그림 가운데에는 문인들이 하나 둘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자연을 즐기는 면을 묘사한 것이 많은데, 예를 들면 간송미술관 소장 김수철(金秀哲, 19세기 중엽 활동)의 <송계한담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 개인소장 이방운(李昉運,1761~?)의 <송하한담도(松下閑談圖)>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이 흐르고, 푸르른 자연의 한적한 곳에서 옛 선비들은 지인들과 함께 시 서화를 즐기고, 담소를담소를 나누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모임의 장면에 배경을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소나무다.소나무 아래의 이 공간은 이미 속세를 떠난 탈속의 공간을 의미했다. 18세기 문인 조윤형(1725~1799)이 자신의 호를 송하옹(松下翁)이라고 한 것은 소나무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잘 말해준다.


선비가 관폭(觀瀑)을 하거나, 자연 속에서 노니는 그림에서도 배경으로는 소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상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윤덕희(尹德熙, 1685~1776)의 <노승관수도(老僧觀水圖)>, 정선(鄭敾海, 1676~1759)의 <의송관폭도(倚松觀瀑圖)>, 김응환(金應煥, 1742~1789)의 <강안청적도(江岸廳的圖)〉 등이 이러한 예이다.


소나무는 인물이 걸터앉는 의자가 되기도 하고, 인물이 기대고 의지해서 서 있게 하기도 하며, 인물의 주된 배경으로 크게 부각되어 자화상의 이미지를 보조하기도 한다. 여기서 소나무는 단순하게 자연 속에 있는 나무 중에 우연히 화폭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풍류와 탈속의 분위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소나무가 다른 나무들을 제치고 채택된 것에는 소나무 가지가 만들어내는 조형미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소나무 줄기에 흐르는 굴곡미, 솔잎의 뭉침과 번짐의 우연성, 소나무 껍질묘사가 주는 질감 등으로 인해 매화나 대나무에 비해 훨씬 동적인 미적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다.


남아있는 그림을 통해 볼 때, 소나무 그림은 문인보다는 화원들에 의해 더 많이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예의 기법에 바탕을 두어 글씨를 쓰듯 그릴 수 있었던 사군자와 달리, 소나무는 기술적인 면에서 문인들에게 난이도가 높은 화목(畵目) 이었다.


탈속과 풍류를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소나무의 예로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조세걸(曺世傑, 1636~1705이후)의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를 들 수 있다. 곡운 조세걸이 자신의 호를 따서 구곡을 경영했던 은거지의 실경을 그린 그림에서 소나무는 세상을 떠나 자연속으로 귀의한 선비의 은거지향적인 면모를 꾸임없이 보여주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실제로 그가 선택했던 이곳에 소나무가 많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실경을 그린 것이라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소나무가 배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신친정계첩(戊申親政契帖)>이 그러한 예이다. 행사 기록화라는 특성상 그림이 그려진 그 당시의 배경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 그림에서는 실제 장소에 없었던 소나무 숲을 그림에 담았다. 이처럼 조세걸의 <곡운구곡도>의 소나무도 은둔의 공간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일 가능성도 있다.


이상에서는 소나무의 상징성과 그것이 그림에서 재해석되는 맥락을 몇가지 유형으로 살펴보았다. 소나무는 어떤 경우라도 심하게 구부러지면서도 그 기개를 잃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림에서 생동감 있는 구도를 창출해낼 수 있었고, 바로 이점이 화가들로 하여금 소나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게 했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상의 <송하관폭도>, 광주 윤영선 소장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무송관수도(撫松觀水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응환의 <강안청적도> 등은 소나무의 형태가 그림의 구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II. 소나무 수지법의 시대적 변천


문헌상 가장 이른 소나무 그림은 신라 때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렸다는 <노송도(老松圖)>일 것이다. 작품은 전하지 않으나 사실적인 묘사와 표현 때문에 새가 날아와 부딪쳤다는 전설은 줄곧 회자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 진파리1호분 벽화에 나타나는 소나무 그림을 들 수 있다. 약간의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여기 묘사된 나무는 소나무라 여겨지고 있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소나무는 독자적으로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소나무를 단독으로 화면에 부각시켜 그리기도 하였으며, 산수배경 속에 하나의 모티프로 곁들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가 되면 소나무 표현은 더욱 다양해진다. 본 장에서는 소나무 세부적인 표현기법을 시대별, 화가별로 살펴보겠다.


이인문-송계한담도


1. 솔잎 표현방법
솔잎을 표현하는 방법은 일단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검은 먹선 만으로 표현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녹색 선만으로 표현하는 경우, 셋째는 검은 먹 선과 녹색 선을 겹쳐서 표현하는 경우이며, 마지막은 검은 먹 선으로 표현하고, 바탕에 녹색 선염을 구사하는 방법이다. 이 네 방법의 차이는 검은 먹만으로 표현하는가 아니면 녹색으로 표현하는가, 그리고 녹색을 의도하는 경우에 녹색을 선염으로 표현하는가 아니면 선으로 표현하는가에 있다.


조선 초기, 중기 그림에서 산수 속에 그려진 소나무의 경우 솔잎은 차륜법으로 그리되 녹색의 선염 없이 먹만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명국(金明國, 17 세기 활동)의 <고사관화도(高士觀畵圖)>,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의 <송하대기도(松下對棋圖)>(산수 인물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흥효(李興孝,1537~1593)의 <추경산수도(秋景山水圖)> 등에서 이러한 표현이 보인다. 푸른 선염을 가미했더라도, 차륜법으로 그려진 솔잎은 매우 일률적이어서 사실성을 전달하지 못한다.실제 소나무의 푸른빛을 묘사하기 위하는 것은 포기되고, 반복되는 패턴처럼 익숙하게 그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솔잎은 그 사실성을 잃고 밤송이처럼 표현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호암미술관 소장 김시(金侍, 1524~1593)의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가미상 <원숭이와 소나무(猿鹿)>에서 극단적인 정도에 이르렀다. 먹만을 이용해 차륜법으로 묘사된 무성한 솔잎 표현으로 인해 실제 소나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솔잎의 푸른빛을 표현하고자 차륜법의 먹 선과 녹색 선을 겹쳐 그린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방식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상좌(李上佐, 1465~?)의 <박주삭어(泊州數漁)>에서 확인되며, 이후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조선후기가 되면, 푸른 선염바탕 위에 먹 선으로 자륜법의 솔잎표현을 한 경우가 훨씬 많아진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전(傳) 진재해(秦再奚, 1691~1769) <월하취적도(月下吹笛圖)>는 이러한 대표적인예에 해당된다.


이제는 먹만으로 솔잎을 그린 예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상의 <검선도> 역시 겹쳐 표현한 예이다. 실제 소나무의 솔잎은 푸른 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림으로 그려질 때에는 푸른 선만으로 이루어진 예는 전혀 없다.


푸른색을 표현하기 위해 먹 선을 겹쳐 표현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필자는 먹 선을 이용함으로써 솔잎의 직선미와 날카로운 느낌을 강하게 표현하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강하게 쭉쭉 뻗은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또한 남종화풍이 유행하면서, 개성적인 소나무 표현이 늘어났다. 차륜법이나 반 차륜법이 아니라 대략적인 간소한 화풍의 소나무의 표현을 볼 수 있는데, 개인소장 윤제홍의 <송하관수도>, 개인소장 이방운의 <송하한담도>에서 솔잎은 푸른 선염과 먹 선으로 그려졌는데, 매우 듬성듬성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이 외에 겸재 정선은 겸재송이라고도 불리는 T자형 소나무를 창안하여 여러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T자형 소나무는 금강산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2. 나뭇가지 표현방법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조선초기에서 중기에 그려진 소나무는 화가별로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 유사한 수지법으로 그려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안견의 <사시팔경도>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에는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본래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바위틈이나 절벽, 모래땅에서 잘 자란다. 소나무는 양성의 나무로 건조하거나 지력이 낮은 곳에서 견디는 힘이 강하다고 한다.
이렇게 살기에 부적합한 척박한 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나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굴곡의 조형미를 가지게 된다. 왼쪽 바위에서 오른쪽 위로 자라난 소나무는 위로 올라가면서 가지가 좌우로 뻗어나가고 있는데, 가지가 오른쪽으로 먼저 뻗고, 좀 더 올라가 다시 왼쪽으로 꺾어져 뻗어나가고, 다시 좀 더 올라가 정상 부분에서는 오른쪽으로 다시 꺾어져 뻗어나가는 형상이다.


전 안견, 사시팔경도

전(傳)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산수도(山水圖)>(국립중앙박물관)나 이징(李澄, 1375~1435)의 <연사모종도(煙寺慕鐘圖)>(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모두 동일한 양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들 그림에서 소나무는 왼쪽 하단에 위치한 바위 틈새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뻗어 있다.


중국 당대 왕유가 "땅 위에서 자란 것은 뿌리가 길고 줄기가 바르며, 돌 위에서 자란 것은 구불구불 굽어 있고.."라고 하였듯이 이들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는 심하게 꺽여 묘사되었다. 이러한 전체적인 소나무의 구도와 잔가지의 묘사는 조선 중기 김시의 <동자견려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반면, 조선초기의 이러한 산수 속 소나무 표현과는 달리, 소나무가 중점적으로 부각되어 그려진 전(傳)이상좌(李上佐, 1465~?)의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에서는 좀 더 소나무
본연의 모습에 가깝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진 소나무를 표현하고 있으며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 바람에 나뭇가지가 날리는 모습이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초기, 중기에 그려진 대부분의 소나무와 달리 이 그림에서 소나무는 산수 속의 경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주제로 부각되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에서 소나무는 매우 크게 그려졌으며, 몇 번의 굴곡을 지으며 위로 솟아 있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도 훨씬 수적으로 많다. 솔잎의 표현도 차륜법이 아닌, 실제 솔잎의 모습에 좀 더 다가서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차이점을 감안할 때, 전 이상좌의 <송하보월도>에서 주제는 소나무 밑의 인물이 아니라 소나무 자체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전반기에는 크게 그려진 소나무가 많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지만, 나무껍질의 묘사는 윤곽선을 그리고 점을 찍듯 마무리한 정도이다. 이에 반해 조선후기가 되면, 나무 표피의 묘사가 좀 더 구체화된다. 나무둥지를 표현할 때에는 비교적 사실적인 표현을 의도하여 윤곽선을 진하게 그리고 안쪽에 어류의 비늘처럼 동글동글하게 질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의도적인 윤곽선 대신에 동글동글 한 표현을 연이어서 자연스럽게 윤곽선 처리를 하였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정선의 <함흥본궁송도>, 호림박물관 소장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의 <송하노승도(松下老僧圖)>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사실적 표현 대신 필묵의 운용을 중시하여, 추상적인 미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선(鄭敾, 1676~1759)의 <고송도(枯松圖)>에서 보이듯이 윤곽선만을 구사하고 질감표현을 생략한 것에서부터, 호암미술관 소장 정선의 <노백도>에서 보듯이 반복되는 필선으로 실제 나무의 질감표현을 대신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소나무 그림을 많이 남긴 화가로는 정선, 이인문, 이인상, 김홍도, 정수영 등이 꼽힌다. 그 가운데 이인상은 말년에 설성(雪城)이라는 곳에 '종강모루'라 이름지은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는데, 사촌동생에게 편지를 써서,


대와 소나무 사이를 파헤치고 조그만 정자를 지었네, 봇물을 끌어당기어 못을 만들고 둘러싸인 산이 제대로 담처럼 되어서 거닐며 즐기기에는 매우 알맞은 곳이나 함께 노닐 수 있는 친구나 형제가 없는 것이 유감일세


라고 하였다.


대와 소나무 사이에 지은 정자는 곧은 절개와 변치 않는 지조의 상징인 대와 소 나무처럼 삼고자 하는 이인상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이인상의 소나무에 대해서는 윤제홍(尹 濟弘,1764~1840)의 <송하소향도(松下燒香圖)>의 화제에서 "능호관 이인상은 매번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향을 피우면서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을 즐겨 그렸는데, 어찌하여 그가 자주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인상 소나무는 <심도>로 대표되는데, 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송하관폭도> 등에서처럼 '관폭'하는 인물과 함께 그려지기도 하였다.
이인문은 자신의 호를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으로 삼았던 것에도 시사하듯 소나무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있었다. 그의 소나무 그림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당대의 찬사가 전한다.




내가 일찍이 내성에서 이공(李公)이 소나무 그리는 것을 보았는데, 운필이 임리(淋漓)하여 일흔 노인의 필 같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그 꼬불꼬불 굽고, 높이 솟은 줄기와 맑고 깨끗한 푸른 비취색 잎을 이루어 내니, 그 우뚝 솟은 모양이 참모습과 흡사하여, 사람들이 그를 신필이라 불렀다.


이인문이 나이 70이 되어서도 혼연의 힘을 기울여 소나무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인문이 소나무와 관련하여 가장 즐겨 그린 소재는 "송하한담(松下閑談)"이다. 또한 지우재 정수영(鄭遂榮, 1743~1831)에 대해서도 "산수와 소나무를 그리는 화가(畵山水松)"라는 언급이 전한다. 정수영의 소나무 그림은 여러 점이 현존하고 있는데,「개자원 화전」을 그대로 임모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쌍송도>, 소나무 숲을 표현한 개인소장 <송림도>, 초상화 대신 소나무 그림을 그려준 <고송산계도> 등이 있다.
한편, 간소하게 솔잎을 표현하던 남종화풍의 소나무는 나무줄기에서도 양쪽 선 두 개로 마무리하고 나무껍질의 느낌은 그다지 중요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두 줄의 간략한 선만으로 나무줄기를 표현하고 있으며, 소나무 껍질의 표현은 성글게 찍은 점으로 대신하였다. 솔잎은 칫솔처럼 가지런하고도 짧게 위로 향한 모습이다.


결론


이상에서 조선시대 소나무 그림에 대해 그 상징성과 표현기법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소나무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의 구절에서도 보이듯이 한국인의 나무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이다. 우리 땅에 자생하며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우리 그림에도 소나무는 수없이 등장한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으니 그림에 배경이 되기에도 쉬웠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소나무는 단지 나무 중의 하나로 선택된 것만은 아니다. 필자는 소나무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화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채택되었음을 밝히고 싶었다.
상징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무의 상징성은 '지조와 절개, 탈속과 풍류' 등으로 나누어 보았다. 그러한 상징성을 가지고 그림의 전체적인 의미를 지지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 비슷해 보이는 그림 속 소나무도 시대에 따라, 화가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형식으로 그려졌다. 솔잎부터 나뭇가지, 나무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시대양식, 화가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시대 소나무 그림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다.
- 2006년 발행 국립 춘천박물관 특별전<소나무와 한국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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