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한국인

소나무를 찾아가는 첫걸음

관리자 | 2018.09.19 | hit. 12

소나무는 솔, 송수(松樹) 등으로 불린다. 우리 말 '솔'은 처음에는 나무 중에서 품계가 가장 높다는 뜻에서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수리'로 불리다가 수리 → 술 → 솔로 변했다고 한다.


어원을 연구하는 한 학자는 '솔'과 '나무'가 합쳐져 '솔'의 '리' 받침이 탈락하여 '소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학자는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 물의 기운이 내뻗치는 것을 '살'이라 하는데, 그것이 '솔'로 되었다고 해석한다. 즉 '솔'은 태양을 나타내는 고유어이며,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한자로는 송(松)자를 쓰는데, 오른쪽 공(公)은 이 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선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 진시황은 갑자기 폭우를 만나 큰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던 적이 있었는데, 뒤에 이 나무를 오대부(五大夫)로 봉했고, 훗날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오대부송(五大夫松)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람도 얻기 힘든 벼슬을 소나무가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일화는 우리나라에도 유사하게 전해오는데, 세조가 벼슬을 내린 정2품송은 유명하다. 또한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은 어릴 때 문신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집에서 자랐는데, 그때 소나무 밑에서 자주 놀았던 것을 기억하고 임금이 된 후 그 소나무에 정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정조는 여주에 있는 영릉을 가다가 언덕 위에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 벼슬을 상징하는 옥관자(玉貫子)를 걸어주고 떠났고, 사람들은 대부송(大夫松)의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성주풀이'라는 노래의 원 이야기는 천상에서 살던 성주가 죄를 짓고 땅으로 쫓겨 와서 안동 땅에 거처를 정한 후 제비에게 소나무씨를 전국에 퍼뜨리게 했다는 무속에서 시작하는데, 사실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제주에서 울릉도, 백두산 등 전역에 걸쳐 없는 곳이 없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다.


일본이나 중국에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하는데, 중국으로 처음 전래된 솔 씨가 바로 신라 솔이라는 이야기를 봐도 소나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나무가 아닐까 한다.
소나무가 우리 문화 속에 큰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음은 소나무와 관련된 어휘들로도 짐작할 수 있다. 소나무 사이는 송간(松間), 소나무 숲은 송림(松林), 그 밖에도 송풍(松風), 송정(松亭), 송단(松檀) 등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말들이다. 그림 속에 서는 더욱 우아한 뉘앙스로 사용되었다. 노송(老松), 고송(枯松), 고송(孤松), 창송(蒼松), 송월(松月), 송음(松陰) 등이 그것이다.


또한 물질적으로는 수호신의 동신목(洞神木)으로서, 제의 공간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벽사(壁邪)의 용도로 옛 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또한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켜주는 우주 목으로서, 즉 신수(神樹)로서 소나무는 천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신단 앞에 위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징성은 무당이 굿을 할 때 손에 잡는 신장대가 소나무라는 점, 땅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하늘을 상징하는 까지 사이를 중계하는 <까치호랑이 그림(鵲虎圖)>의 노송(老松)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나무가 화가, 조각가, 도공들의 손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소나무가 미술문화와 관련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소나무의 조형미를 표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디자인이 아니라 재료로써 소나무를 택하는 것이다.


신라의 솔거(率居)는 사찰의 벽에 <노송도(老松圖)>를 그렸다고 전하나 현존하지 않으며, 고구려 고분벽화 중 진파리1호분에 그려진 소나무가 현존하는 우리나라 소나무 그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남아있는 유물 중에 시대가 올라가는 것으로는 통일신라시대 안압지에서 출토된 남근 모양 목제품, 나무배 등의 재질이 소나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고류지(廣隆寺)에 전하는 목조반가사유상은 제작지의 논란이 있었지만, 소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설에 힘이 실어지기도 하였다.




단원 김홍도의 송하유록도(松下幼鹿圖) / 1795 / 종이에 수묵담채화 / 개인소장


송백(松栢)의 무성함과 같이, 장수와 길상


인간은 누구나 늙거나 병들지 않고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장생(長生)을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은 먼 옛날부터 있었던 것으로, 『서경(書經)』에는 오복(五福) 중 장수(長壽)를 제일 으뜸으로 꼽았다. 중국 청대 진부요(陳扶搖)가 쓴 『화경(花鐵)」을 보면,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인데, 껍데기는 용의 비늘 같고, 잎은 말갈기 같으며, 눈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고 씌어 있다. 고려 이색(李權, 1328~1396)의 『목은집(牧德集)』에는 「세화십장생(歲畵十長生)」이라는 글이 있는데, 그 가운데 소나무에 대해서 "북쪽 언덕 위 솔 한 그루, 늙은 내가 겨울에 다시 와보니, 첩첩 봉우리와 재에 구름 떨치고 푸르고도 든든하네"라고 하였다.


십장생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었던 소나무는 늙거나 병들지 않고 오래 살고자하는 인간의 간절한 염원을 간직한 채, 장과 농, 좌경(座鎭)과 빗접, 반짇고리 등이나 왕실에서 서민들까지 모두가 감상한 그림의 주된 소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림에서 소나무가 장수의 상징형으로 그려진 대표적 예는 <십장생도(十長生圖)>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십장생도>에서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하는 10가지 영물 중의 하나로 거북이, 바위, 학, 영지, 사슴 등과 함께 등장하였다.


그 외에도 소나무 위에 앉거나 그 주위를 선회하는 학, 바위, 사슴 등과 함께 그려 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나무와 학이 함께 하면 <송학도(松鶴圖)>, 바위와 함께하면 <송석도(松石圖)>, 사슴과 함께 하면 <송록도(松鹿圖)>가 된다. 또한 대나무, 바위와 함께 묘사되면 <고목죽석도(枯木竹石圖)>가 된다.


이렇게 장수의 상징성을 가진 소나무 그림은 감상화로, 혹은 장식적인 문양으로 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다. 후자의 경우는 극도로 양식화되고 도안화되어 장식성이 강하다. 이렇게 도안화되었기 때문에, 도자기나 일상생활의 가구, 공예품 등에 응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신라의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렸다는 <노송도(老松圖)>에서 새가 착각하고 앉으려다가 부딪쳤던 사실성을 가진 소나무가 더 이상 아니다. 일종의 그래픽 다자인으로서, 문양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변함없는 푸르름, 지조와 절개


추운 겨울이 되면 다른 나무는 모두 잎이 시들어 버리지만, 소나무와 잣나무는 상록의 푸른 빛이 오히려 되살아나 다른 나무와 구별됨을 새삼 알게 된다는 말로, 역경에 처해 보아야 인간의 진가를 안다는 말이다. 이러한 고전은 조선말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옛 선비들에게도 이러한 소나무의 의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도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고 하여 소나무의 절개를 칭송하였고, 성삼문(成三間, 1418~1456)도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 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고 하여 절개와 충절로서의 소나무를 노래하였다.


겨울이라는 상황은 옛 문인들에게 혹독한 시련, 고독한 은거생활 등을 의미 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한계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도 본래의 지조를 잃지 않는 모습을 강조하여 과시하고자 했다. 이러한 맥락에 딱 들어맞는 것이 '설송(雪松)'이었다. 눈이 내려앉아도 초라하지 않고 오히려 푸른 빛 을 발하며 곳곳하게 서 있는 소나무, 그것은 다름 아닌 문인들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소나무를 보면서, 소나무 그림을 그리면서, 소나무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안에 자신을 투영했다. 눈서리를 모르는 변함없는 그 푸르름에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다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송을 그린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 현존하는 그림으로는 이인상의 <설송도(雪松圖)>(국립중앙박물관)와 정선의 <노송재설(老松在雪)>(간송미술관)이 있다. 아마도 소나무를 그린다는 것 자체는 문인들에게 사군자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눈이 덮인 표현은 한층 더 고도의 기법을 요구하였다. 뒤 틀리며 솟아있는 눈 내린 소나무의 조형성은 화가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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